꼭 전문가가 되어야 할까? | 스페셜리스트 vs 제너럴리스트

“나에게 배움은 설렘이자 즐거움이고, 나를 늙지 않게 도와주는 활동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질문지에 ‘나는 전문가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판치는 세상인데, 스스로 ‘나는 디자인 전문가가 아니다.’라는 게 궁금하다 했다. 일단 나는 진짜 전문가가 아니다. 전문가라고 한다면 특정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데, 나는 디자인 분야에 대한 상당한 지식과 경험이 없다. 디자인 전문 회사에 다녀본 적도,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해 본 적도 없다. 나는 디자인 업계에서 쓰는 실무 용어도 잘 모른다.

대신 나는 디자인이라는 분야 한 가지만 파는 대신 여러 분야를 배웠다. 모든 일은 관심과 호기심으로 시작해 주먹구구식으로 배웠기 때문에 전문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뭘 배워서 취업하거나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냥 그 배움의 과정이 즐거웠다. 그래서 계속해서 새로운 걸 배우고 기존의 능력과 짬뽕시키면서 새로운 걸 만들어왔다. 물론 전문가라고 해서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배우는 양으로 보면 새로운 걸 배우는 게 깊이는 얕지만, 양은 더 많다. 원래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경험치를 쌓는 게 오래 걸린다. 나는 레벨 100짜리 게임 캐릭터 1개가 아닌 레벨 20짜리 여러 직업의 캐릭터 5개를 가진 것 같다. 레벨 20까지 키우는 시간이 한 달이라고 친다면 레벨 100까지 올리는 데에는 1년이 걸린다. 20까지만 키우면 1년 동안 12개의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어려운 걸 잘 못 하고 쉽게 포기한다. 입문에서 중급까지는 빠르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데, 중상급 이상부터는 급 어려워져 흥미가 떨어진다. 나는 자전거 정비, 의류 세일즈, 마케팅, 행사기획, 일러스트, 웹디자인, 사진, 글쓰기, 브랜딩, 책 편집, 굿즈 디자인, 영상,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걸 배웠고, 최근엔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직업을 소개할 때도 나를 일러스트레이터라고 해야 할지, 사진작가라고 해야 할지, 영상 편집자라고 해야 할지, 브랜드 디자이너라고 할지 항상 고민이었다. 일단 돈을 벌 수 있는 최소한의 수준은 되는데 뭔가 한가지 직업을 정하면 사람들은 그 일만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라고 나를 소개한다. 콘텐츠라고 한다면 일러스트, 사진, 영상, 음악 등 모든 게 들어갈 수 있다. 근데 크리에이터를 전문가라고 부르진 않는다.

물론 일을 주는 입장에서는 전문가가 아니면 돈이 되는 큰 프로젝트나 전문적인 일을 주지 않을 수 있다. 근데 상관없다. 나는 전문적인 일을 하는 스페셜리스트가 되고 싶은 게 아니다. 다양한 일을 조금씩 경험해 보고 이것들을 묶어서 나만의 작업을 만드는 게 더 좋다. 큰돈은 아니지만 먹고살 수 있을 정도는 된다. 요즘은 직업이 빠르게 사라지는 시대다. 그래서 내 직업 중 하나가 사라져도 불안하지 않다. 다른 걸 하면 되니까.

나에게 배움은 설렘이자 즐거움이고, 나를 늙지 않게 도와주는 활동이다.

뇌과학적으로 봤을 땐

뇌과학적으로 신경 가소성(neuroplasticity)과 관련이 있다. 신경 가소성은 뇌가 새로운 경험과 학습을 통해 스스로를 재구성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뇌는 새로운 정보를 학습할 때마다 신경 회로가 형성되고 강화된다. 이는 마치 자주 사용하는 길이 더 넓고 평탄해지는 것과 같다. 꾸준한 학습과 새로운 경험은 이러한 신경 회로를 지속적으로 활성화하고 강화해 뇌를 건강하고 유연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특히,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을 배우는 것은 뇌의 다양한 부분을 자극하고 활성화해 뇌세포 간의 연결을 강화한다. 이는 나이가 들어도 뇌의 기능을 유지하고 심지어 향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지속적인 배움은 뇌의 신경 가소성을 촉진하여 인지 기능의 쇠퇴를 늦추고, 나이를 먹더라도 젊고 활기찬 정신 상태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고 한다.

글을 쓰고 생각해보니 나는 배움 전문가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