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열정 바이오리듬이 있다. 이게 뭐냐면, 열정 롤러코스터를 타는 거다.
어떤 때는 열정이 넘쳐 세상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태가 되어 많은 일을 벌여놓는다. 이 상태에서는 엄청난 집중력, 집요함, 광기로 무언가를 이루고 큰 성취감을 느낀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면 열정은 사그라들고 바닥을 지나 지하까지 내려간다. 이때는 세상 무엇도 하기 싫고,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고 중독에 취약해져 하루 종일 누워서 게임을 하거나 숏폼 영상을 본다.
나는 이게 무언가를 할 때마다 너무 열심히 해서 “번아웃”이 오는 것인 줄 알았다. 가장 큰 문제는 열정이 많을 때 많은 일을 벌여 놨다가 중간에 열정이 떨어졌을 때이다. 그럼, 열정도 없는 무기력한 상태로 벌려놓은 일들을 수습해야 하는데, 당연히 잘 될 리가 없다.
생각해 보니 이건 어릴 때부터 쭉 그래왔던 것 같다. 30대가 되니 이 패턴이 바이오리듬처럼 반복된다는 것을 알았고, 의식적으로 열정이 많을 때 너무 일을 벌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그 마음을 억누르는 것도 힘들다. 열정이 바닥난 상태는 하루, 일주일, 한 달, 가장 길 때는 2년 동안 유지된 적도 있었다.
물론 열정을 다시 불태워 보려고 별의별 시도를 다 해봤다. 자기 계발서도 읽어보고, 사람들도 만나보고, 술도 마셔보고 했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제는 그 패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냥 다시 열정이 타오를 때까지 기다린다. 억지로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오히려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보내다 보면 몸이 근질근질하기 시작하고 어느새 열정 파도에 올라타게 된다. 열정 상태일 때는 작업을 많이 올리고 무기력 상태일 때는 작업물을 거의 올리지 않는다. 그래서 2년간 작업 활동을 쉰 적도 있었다. 이제는 막을 수 없기에 그냥 받아들이고 의식하니 무기력 상태에서도 버틸 힘이 생겼다. 언젠가 이 고통스러운 시간이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나중에 정신과에서 알아보니 바이폴라 어쩌고 하는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았는데, 나는 감정 기복이 큰 편이 아니라 내가 해당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내가 발견한 이 열정 패턴도 그 일부라고 한다. 어쨌든 겪어보니 사람들이 뭔가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을 봤을 때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누군가는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어서 “아직” 움직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때는 누가 뭐라 해도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제는 무기력한 사람들에게 공감이 되고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있다.
내가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 알면 어려움을 해결하진 못해도 어려움을 견딜 힘이 생긴다.